머리가 댕댕 울렸다. 깊게 잠겼던 의식이 통증에 따라 흔들렸다. 전신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신음하며 힘겹게 눈을 떴다. 흐으으. 숨이 가쁘게 떨렸다. 가까스로 뜬 눈, 시야 안에 갇히는 낯선 풍경에 히나타는 멍하니 끔벅였다. 신체에 차곡차곡 누적된 알코올과 별 희한한 꿈에 절여진 정신은 이지를 잃어버린 채 판단하기를 거부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통증에 억지로...
책 속의 페이지들이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어간다. 한 손으로 턱을 짚고 한 손으로 책을 넘기는 손 끝이, 어두운 남색의 수트를 입고 다리를 꼬며 앉아 있는 남자에게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이 엿보였다. 내리깐 남자의 속눈썹이 얕게 깜박인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남자의 모든 것을 수줍게 훔쳐본다. ‘저기 봐, 그 오이카와 토오루야....
“이혼해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알았다.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음을. 한 때는 사랑했던 것 같았다. 저 남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아파오고 얼굴이 붉어지는 이 감정이 사랑이라면. 분명 처음에는 필요로 인해 맺어진 관계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턴가 눈 앞의 이 남자에게 마음을 품었다. 매일 보아온 얼굴이라 정이 들어서인가, 하고 수없이 고민했던...
영원의 이름으로 : 영원 속으로 written by. 은설림 - 요요히 빛나는 달빛 아래서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힘차게 달리던 짐승이 멈춰서서 길게 울었다. 우우우우—. 기나긴 울음소리를 마친 짐승이 고개를 내리자 누군가를 발견한 듯 가볍게 도리질 했다. 그 반동으로 결 좋은 털에 군데군데 어린 물방울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늑대의 은회안에 맺힌 두 인영이 ...
영원의 이름으로 20. 영원으로 가는 길 (下) written by. 은설림 - 오랜 시간을 달려온 듯 한껏 구겨진 백의와 허리에 두른 띠에 새겨진 금빛의 문양, 작은 몸을 보호하듯이 일렁이는 푸른 빛. 츠키시마의 눈길이 천천히 히나타를 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행스럽게도 부드러운 피부와 거센 바람을 맞아 붉은 복사꽃이 ...
영원의 이름으로 19. 영원으로 가는 길 (中) written by. 은설림 - 히나타 쇼요의 존재가 세계의 규칙이었고 세상을 균형 있게 하는 유일(有一)의 인간이었다. 이계에서 배척 받고 선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던 소년. 그게 히나타 쇼요의 지금을 완성하고 반려에게서 운명을 얻었다. 계속 변화하는 운명의 뒤틀림은 히나타에게 있어 굳이 따라야 할 것은 아니었...
영원의 이름으로 18. 영원으로 가는 길 (上) written by. 은설림 - 가만히 앉아서 듣던 츠키시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시미즈의 질문은 선택할 이유도, 답할 이유도 없다. 그가 할 선택과 답은 오로지 하나뿐이기에. 시린 눈동자가 잠시 제 보좌관을 본다. 눈을 맞춰오는 상관의 눈 속에 담긴 무게감을 느낀 듯 침을 꿀꺽 삼키는 야마구치를 보며 ...
영원의 이름으로 17. 영원의 이름 (下) written by. 은설림 - 지상세계에서 평범히 쓰였을 이름이, 히나타의 마지막 조각이었고 영원의 이름이었다. 영원의 이름은 세 가지 조건이 완성되어야 불릴 수 있는 이름이었다. 태양을 상징하는 이름인 히나타 쇼요, 조각난 기억과 영혼이 품고 있는 정화의 힘, 그리고 반려의 피. 반려인 츠키시마가 진심을 다해 ...
영원의 이름으로 16. 영원의 이름 (中) written by. 은설림 - 마침내 고개를 든 히나타를 두 쌍의 눈동자가 예민하게 살폈다. 그를 번민케 하던 고민이 전부 사라진 듯한 눈동자는 명료하게 빛났다. 드러난 피부 위로 와 닿던 서늘한 겨울의 빛이 온기를 되찾아갔다. 이제는 익숙한 겨울바람이 살랑이며 히나타의 손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은백의 세상은 히...
영원의 이름으로 15. 영원의 이름 (上) written by. 은설림 - 화사한 봄을 떠올리게 하는 금빛의 노란 꽃이 만개해 별빛처럼 반짝이는 은백의 숲은 세계를 굽어보는 고귀한 주인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아름다운 반려를 찾아내어 제 모든 것을 허락한 사내에게 ‘영원의 이름’을 알아내라 독촉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은백의 주인을 또 다시 잃고 싶지 않았던...
영원의 이름으로 14. 불가항력 (下) written by. 은설림 - 영원의 이름. 끝까지 알 수 없었던 미지의 단어. 히나타가 다시 한 번 더 중얼거리며, 츠키시마의 주의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부드럽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멈춘다. 이윽고 의아한 빛을 띄는 금빛 눈동자가 히나타의 얼굴 위로 별빛처럼 쏟아졌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히나타는 얼굴을...
영원의 이름으로 13. 불가항력 (上) written by. 은설림 - 두 개의 시선이 마주쳤다.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멍하니 굳은 얼굴을 보며 히나타는 웃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별빛을 담은 새벽노을처럼 반짝였던 눈은 사라지고 깊은 밤이 다가오기 전 마지막 생명을 바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눈이 남아 있었다. 어째서. 츠키시마는 히나타의 전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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